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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e 2024

2024년을 반추해보니, 내 삶의 여러 순간들이 떠오른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남편이 부정맥으로 쓰러져 병원 생활을 했던 일이고, 그 다음으로는 다시 공부를 시작하게 된 일이다. 굵직하게는 이런 큰 일들이 있었지만, 세세히 기억을 더듬어보니 또 다른 의미 있는 순간들이 있었다. (솔직히 그 전 일들을 떠올리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워낙 올해 후반부 일이 임팩트가 컸어서...)

2024년 전반부에는 미주 청년들과 함께 했던 온라인 계시록 성경 공부가 있었고 (이 모임은 언젠가 다시 재개하고 싶은데 그게 언제가 되려나...), 온 힘을 다해 준비했던 디모데전서 2장 후반부 설교가 있었다. '여자는 잠잠하라'는 바울의 글을 놓고 깊이 공부하고 고민했던 시간이었다. 전달하기까지 얼마나 떨리고, 하고 나서는 속이 어찌나 후련하던지... 나 나름대로의 정리가 필요한 부분이었는데 설교 스케줄이 잡히는 바람에 덕분에 그 일을 해결할 수 있었다.

여름에는 코스타 전체 집회에서 말씀을 전하고 오전 성경 공부를 인도했던 일도 있었다. 그 기간 중에 남편이 쓰러져서 마지막 날 성경 공부는 인도하지 못했지만, 말씀을 대하며 신나하던 청년들의 모습에서 나 또한 많은 힘을 얻었다. (남편이 병원에 실려간 일이 너무 묵직한 사건이었어서 솔직히 코스타에 대한 기억은 후반부만 있다. ㅠㅠ)

연말에는 ReconsiliAsian 단체의 초대로 '평화의 눈으로 읽는 요한계시록' 강의를 했다. 오랜 시간 고민하며 준비한 내용을 떨리는 마음으로 풀어내던 그 순간이 생생하다. 늘 최대한 드라이하게 말씀을 공부하고 전달하지만, 그 안에서 나만 경험하는 특별한 촉촉함이 있다. 폭력적이고 비인간적인 팍스 로마나(Pax Romana)의 세상 속에서 믿음으로 저항하며 팍스 크리스티(Pax Christi)를 꿈꾸는 어린양을 따르는 평화 공동체에 대한 비전을 나누는 것은 참으로 벅찬 일이었다. 불의가 이기는 것 같지만 그리스도는 여전히 보좌에 앉아 우리를 다스리고 계심을... 이 믿기지 않는 성경의 이야기에 위로를 받았다. 

2022년 12월에 시작한 교회 청년부와 함께한 소선지서 공부는 올 한해도 내내 이어졌다. 적은 숫자가 모이지만, 그 안에서 나누는 이야기는 깊이가 있고 현실적이다. 이런 청년들과 지속적으로 성경 공부를 해나갈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특별하다. 그러나 대외적으로 이름을 알리며 일회성으로 끝나는 일과 비교해 이런 섬김은 쉽지가 않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을 성실하고 꾸준히 해나간다는 것은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일. 하나님, 칭찬해주세요.

9월부터는 박사 과정이 시작되어 수업을 듣고 매주 페이퍼를 쓰느라 생존 모드로 살고 있다. 16년만에 학교로 돌아간셈인데 영어로 된 아티클과 논문을 읽고 한글로 페이퍼를 쓴다. (그렇다. 이 과정은 한국어 과정이다. 왜 한국어 과정을 하냐고 묻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설명이 길어 생략.) 영어로 읽어도 온전히 이해하기 쉽지 않은데, 그것을 부족한 한국어 실력으로 표현할 때의 어려움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어설픈 나이에 미국에 와서 생각의 틀이 온전히 형성되기도 전에 부족한 영어 실력으로 고등 교육을 받다 보니 글쓰기가 형편없는데, 지금은 신학을 배우는 것보다 글쓰기를 배우는 시간이 되는 것 같아 씁쓸하면서도 웃음이 난다. 하지만 과제는 힘들어도 동전학, 파피루스학, 비문학, 유대문헌학, 등을 들으며 이상하리만큼 신나하는 것을 보면, 나도 일반적이지는 않다 싶다. 첫 학기가 1월 중순까지 이어지기에 여전히 수업을 듣고 있고 학기말 과제와 씨름하는 중이다. 물론 이번 학기 후에 공부를 이어갈지에 대한 현실적 고민은 여전히 하고 있다. 공보도 다 때가 있다는 옛 어른들의 말씀이 이해가 된다. 

아이들 이야기를 하자면, 둘 다 잘 자라주고 있다. 사춘기에 접어들려는 작은 아이, 이미 사춘기에 들어선 큰 아이, 엄청난 폭풍이 몰아칠 듯도 하지만, 아직까지는 둘 다 밝은 모습으로 자라고 있다. 남자아이들치고는 엄마를 찾아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편이어서, 그 모습이 고맙기까지 하다. 부모가 유스 모임에 나타나면 보통 불편해 하기 나름인데, 나는 거기서도 성경 교사다. 우리 아이들은 그것을 불편해 하지 않고 당연히 여겨주니, 그것 자체로 특권이 아니겠는가. 

남편은 많이 건강해졌다. 아직 정기적인 체크업은 필요하지만 처방전 약도 많이 줄었고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내 공부를 위해 부엌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 남편에게 감사하다. 계속 화이팅! ㅋㅋ 하지만 야채 요리는 조금 더 해주길 바라본다. 😁

아직 학기가 끝나지 않은 상황이라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한 실감이 덜하다. 아직 마무리하지 못한 일들이 있어서일 것이다. 힘든 일이 많았던 한 해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래서 더 here & faraway의 많은 이들의 환대를 경험했던 한 해이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도 한국과 미국은 물론 지구촌 곳곳에서 들려오는 마음 아픈 소식들, 불의가 이기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을 보며 고민한다. 내가 이렇게 치열하게 살아가는 것이 이 세상과 어떤 관계가 있을지, 이 책상에서 보내는 시간들이 세상과 맞닿아 있는지 고민하게 된다. 이는 성경 교사로서 내 마음 속에서 떠나서는 안 될 고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