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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작은아이는 산수도, 영어도, 운동도, 그림도 잘하고 싶어 하고, 목표도 잘 세우고 계획도 척척 짜는 열정 넘치는 아이다. 친구들처럼 과외를 받으면 더 잘할 것 같다고 가끔 말하기도 한다. 물론 그 계획이 이틀도 못 가고 다른 관심사로 금방 넘어가긴 하지만, 그래도 아들의 관심과 열정을 응원하고 싶어서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도와주려고 노력 중이다. 과외는 형편상 어렵지만, 내가 대신 가르쳐줄까 하고 물어봤더니, 엄마를 믿는 건지 하겠다고 한다. (순간, 아… 괜히 물어봤네 싶었지만…) 그래도 하고 싶은 게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특하다.

어제 저녁에 아들이 풀어놓은 산수 문제를 오늘 낮 동안 맞춰봤다. 학교 갔다 오면 같이 풀어봐야 하기 때문이다. 또 도서관에서 책도 빌려달라고 했는데, 아… 집순이 엄마에게는 이게 너무 귀찮다. 게다가 이 동네는 도서관이 멀어서 한 번 가려면 큰일처럼 느껴진다. 땅이 넓어서 그런지 가는 길이 참 멀게 느껴진다.

큰아들은 요리를 좋아해서 다음 학기에 culinary 수업을 듣고 싶다고 했지만, 하루 만에 안 듣겠다고 마음을 바꿨다. 친구들과 얘기하다 보니 부담이 됐던 것 같다. AP 수업과 학점 경쟁이 치열한 분위기에서 혼자 culinary 수업을 듣는 게 마음에 걸렸던 것 같다. (그리고 수업 수준이 생각보다 낮아 보였던 것도 이유였을 것이다. 지후는 요리를 꽤 잘해서 며칠 전에는 직접 hummus도 만들었다.) 이번 학기에 AP 수업을 많이 듣다 보니 9학년이 이렇게 바쁠 필요가 있냐며 내년에는 조금 더 여유를 가지라고 했는데, 내 말이 통할지는 모르겠다.

아이들 주변에 학구열이 높은 친구들이 많아서인지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영향이 항상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십대 시절에 다양한 경험과 배움을 누릴 수 있는 기회가 많은데, 한 방향으로만 치우치는 게 아쉽기도 하다. 그리고 인생을 너무 좁은 틀로 바라보거나, ‘성공’을 소유의 정도로만 정의하지 않기를 바란다.

아이들이 하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것을 재정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전적으로 지원해 줄 수 없는 현실이 아쉬울 때가 있다. 하나의 길만 있는 것도 아닐 텐데, 형편상 더 불편한 방법을 선택해야 할 때가 있다는 게 안타깝기도 하다. 그래도 아이들이 자기 길을 찾아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창의적으로 삶을 터득하고 주어진 환경에서 만족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불편함이나 부족함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 그 안에서 만족과 소명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아이들이 알게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