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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onal reflections & scribbles

남편은 사고뭉치

어제 저녁에 거실 청소를 돕다가 벽에 튀어나온 못을 제대로 밟아 남편의 발바닥 깊이 들어가는 사고가 있었다. 일부러 밟으려고 해도 왠만해서는 밟기 어려운 위치에 있는 못이었는데, 그걸 어떻게 저렇게나 제대로 밟으셨는지... 거 참... 

처음에 못을 밟았다고 했을 때는 바닥에 튀어나온 못도 없고 해서 무슨 소린가 했었는데, 왠걸... 순식간에 바닥에 피가 펑펑 쏟아졌다. 아이들도 나도 당황해서 우왕좌왕 소리 지르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래도 위급 상황에서 아이들의 대처 능력을 보니, 이래서 아들이 든든한건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왠만해서는 민첩함을 보이지 않는 J가 빛의 속도로 휴지를 가져와 피를 닦고 응급 상자에서 알코올과 밴드와 이것 저것을 챙겨 온다. A는 화장실로 뛰어가 급하게 하나님께 기도했다고 한다 (귀여운 녀석 같으니라고). 그 사이는 J는 망치로 벽에 튀어 나온 못을 뽑아버렸다. ㅎㅎㅎ 발을 높은 곳을 향하게 들고 바닥에 누워 있는 아빠에게 편하게 누으시라고 쿠션과 이불과 벼개를 들고 뛰어오는 아이들. 아빠의 면역 기능을 높여야 한다며 비타민을 챙겨와 입에 넣어 주는 큰 아들. 심적인 안정을 찾아야 한다며 이야기 성경책을 읽어 주는 작은 아들. 이 상황을 만든 남편을 보면 속이 터지지만 (그렇다, 아내의 마음은 솔직히 좀 그렇다 ㅋㅋ), 아이들이 아빠를 위해 동분서주 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흐뭇하기만 했다.

아무래도 파상풍 주사를 맞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다음 날 아침 남편을 응급실에 보냈다 (일반 병원으로 갈 수도 있지만 이 곳에서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수도 있는 일이고 해서...). 나는 오전에 모임이 있어서 동행할 수 없었고, 마침 오전 수업이 없는 작은 녀석에게 아빠를 잘 보필하라는 중요한 임무를 맡기고 함께 보냈다. 아빠가 주사 맞을 때 안 무섭게 옆에서 응원도 해주고 두 손 꼭 잡아주라고 하면서... (사실은 부상당한 아빠의 베이비 시팅인데...ㅋㅋ). 

나중에 이야기 들어보니 아빠가 주사를 두 대나 맞았는데, 잘 맞았다며 A가 뽀로로 비타민 사탕도 주었다고 한다. 오후에 간 유치원 선생님 말씀으로는 아빠 따라 병원 갔던 것이 나름 긴장이 되었던지 입맛도 없고 피곤하다고 점심도 걸렀다고 하던데... 내가 너무 큰 임무를 맡겼나? ㅎㅎㅎ 

지난 해 5월, 남편은 동료 선교사님의 오래된 manual 자동차를 운전하다가 큰 화상을 입었었다. 엔진이 가열이 돼서 조치를 취했어야 했는데 마음이 급한 나머지 warning sign을 제대로 읽지 않아서 뜨거운 증기에 화상을 입었었다. 그때의 부상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남편 덕분에 정말 오래간만에 보험 회사에 claim form을 보낼 작업을 하고 있다. 우리 가족이 지난 10여년 동안 보낸 claim form의 대부분은 남편의 것이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남편의 부상은 나에게 민감한 주제가 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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