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코스타는 유난히 꽉찬 일정이었다. 하루에 4시간도 채 못 잘 정도로 움직였고, 맡은 사역을 감당하느라 피곤함이 쌓였다. 너무 지치면 오히려 잠이 오지 않는 상태가 되기도 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에너지를 쏟다 보니 뇌가 과부하된 것처럼 느껴져 쉬는 것도 쉽지 않았다. 잠자리가 바뀌면 잠들기 어려운 나의 예민함도 한몫했다.
이번에 내가 맡은 주요 사역은 ‘Learning God’s Story(LGS)’라는 90분짜리 중그룹 성경공부를 매일 아침 3일간 인도하는 일이었고, 그 외에도 개인 상담이나 그룹과의 교제 등 여러 만남이 이어졌다. LGS는 올해로 네 번째 섬기는 프로그램이지만, 이상하게도 해를 거듭해도 긴장감이 줄지 않는다. 매번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연령대도 다양하기 때문에 낯을 많이 가리는 나로서는 여전히 떨리고 긴장되는 시간이다. 물론 막상 성경공부가 시작되면 긴장은 어느새 사라지고, 마치 또 다른 내가 나와서 90분을 채우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집에 돌아오면 그동안 쏟은 에너지를 회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아마 코스타 기간 동안 말한 양은 평소 내가 한 달 치 말한 양을 합쳐도 모자랄 정도일 것 같다.
올해 LGS는 특히 더 기억에 남는다. 인도자 중 한 분이 개인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하게 되면서, 그룹이 재편성되었고 나는 기혼자와 싱글이 섞인 조를 맡게 되었다. 1961년생부터 1991년생까지 무려 30년의 세대 차가 있었는데, 나는 다양한 세대가 함께하는 성경공부에 익숙한 편이지만, 참석자 입장에서는 다소 낯선 조합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LGS에 참석한 분들의 반짝이는 눈빛과 말씀에 대한 진지한 태도, 그리고 성경에 재미를 느끼는 모습을 보면서 참 감사했다.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말씀에 대한 관심이 다시 깨어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내 마음도 뜨거워졌다. 물론 3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다룰 수 있는 내용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지만, 그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코스타가 끝난 뒤에도 종종 참석자들에게서 연락이 온다. 새로 시작한 성경공부에 어떤 자료를 쓰면 좋을지, 소그룹 성경 공부를 어떻게 이끌면 좋을지 조언을 구하는 경우도 있다. 나름의 A/S라고 할 수 있는데, 찾아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Life Coaching이라를 프로그램을 통해 가졌던 개인적인 만남도 의미 있는 시간들이었다. 사실 나도 내 삶에 코치가 필요한 사람이고 부족한 사람인데, 이런 자리에 서는 것이 늘 조심스럽다. 하지만 오히려 더 많은 실패와 넘어짐을 경험한 사람으로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조모임은 두 번 참석했는데, 한 번은 나와 비슷한 또래의 엄마들로 구성된 모임이었다. 공감 가는 이야기들이 많아 함께 웃고 서로의 마음을 나누며 참 따뜻한 시간을 보냈다. 다른 한 번은 내가 대학생이던 시절에 태어난 젊은 직장인들이 모인 조였는데, 식사 중 “성경공부는 어떻게 시작하면 되나요?”라는 질문을 받고 짧은 시간에 핵심만 쏙쏙 뽑아 나름의 성경공부 노하우를 전해주기도 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공부에 대한 갈망과 필요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소망으로 다가왔다.
이번 코스타에서 좋았던 또 다른 한 가지는 강사님들과의 교제 시간이었다. 각지에서 모인 훌륭한 강사님들과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마음은 늘 있었지만,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 탓에 몇 년이 지나도 제대로 인사 한 번 못 드린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나름 용기를 내어 노력해보았다. 먼저 다가와 말을 건네주신 분들께는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또 처음 뵌 분들 가운데는, 평소 SNS를 통해서만 알던 분들도 있었는데, 그분들을 통해 내가 잘 알지 못했던 새로운 영역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고, 그 자체로 큰 배움이 되었다.
전체 집회 시간도 참 좋았다. 모든 시간이 다 좋았지만, 특별히 첫날 아침, 올해 유일한 여성 plenary speaker셨던 김정아 교수님의 말씀이 인상 깊었다. 그날 아침 내가 LGS에서 나눴던 말씀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내 안에서는 하나의 affirmation처럼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성경 공부 본문 선정에 고민이 많았었는데, 내가 아주 off하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코스타가 여전히 남성 중심의 색채를 강하게 가지고 있다는 점은 앞으로 풀어야 할 중요한 숙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여성 강사 좀 소개해 주세요”라는 말을 종종 듣곤 하는데, 사실 여성을 리더로 세우는 환경 자체가 부재했던 한국/한인 교회의 상황에서 좋은 여성 강사를 찾기 어려운 현실은 어쩌면 너무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물론 코스타에 오시는 좋은 여성 강사님들도 계시지만, 각개 전투에 익숙한 구조 안에서 여성 간의 연대를 느끼기에는 환경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쉽지 않다.
수요일 아침 김재우 선교사님의 말씀도 참 좋았다. 한 마디도 놓치고 싶지 않아서 노트 테이킹도 하지 않고 집중해서 들었다. 무슨 말을 하시려는지 너무도 잘 알 수 있었고, 마지막 부분에서는 차분하게 전하셨지만 fiery한 내용도 좋았다. 그리스도인의 환대에 대한 메시지에 200% 공감했다. 힘을 가진 호스트가 베푸는 환대가 아니라, 힘이 없는 guest로서 누군가의 환대에 기대어 살아가는 경험, 그리고 그 안에서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그것을 이제는 too much power를 가진 교회가 배워야 할 때라 생각한다.
배덕만 교수님의 말씀은, 다른 한 강사 목사님의 표현대로 정말 코스타 역사상 하나의 historic moment였다. 평소 스타일과는 다르게, 돋보기 안경을 쓰시고 제한된 방식으로 조심스럽게 원고를 읽어나가시던 모습이 내게는 마치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한 예언자의 포효처럼 들렸다.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지금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 내게는 절대 잊히지 않을 코스타의 장면으로 남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작년 코스타에서 남편이 건강 문제로 쓰러져 3일간 입원했던 기억이 있어, 올해는 그 기억을 넘어서는 (나름의 PTSD) 작은 도전의 시간이기도 했다. 다행히 남편은 이번에 자신의 팀에서 영상 제작을 즐겁게 감당했고, 많은 사람들이 “20대가 만든 영상인 줄 알았다”고 코멘트 해주어 큰 격려를 받은 것 같다. 매년 코스타 미디어팀을 도우면서 중년의 나이에 젊은 세대를 위한 영상을 만든다는 것이 '과연 이게 맞나' 싶다는 말을 종종하곤 했었는데, 그런 칭찬을 듣고 자신감도 회복하고 기쁘게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코스타 간사님들께는 남편이 감각을 잃지 않도록 옆에서 잘 챙기겠다고 농담 삼아 약속하기도 했다.
한 번의 만남이 과연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 늘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돌아보면 그런 짧고 우연한 만남들이 지금의 나를 형성해온 시간들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나 역시 누군가의 믿음의 여정에 작지만 의미 있는 격려와 위로를 건넬 수 있었기를 소망해 본다.
그나저나 이 피로는 언제쯤 풀릴까. 아직도 온몸이 피곤한 걸 보니, 회복에는 시간이 더 필요한가 보다. 잠시 중단했던 리서치 페이퍼를 써야하는데 흐름이 깨져 도무지 집중을 할 수가 없다. 😩
추가: 올해 코스타를 준비하며 간사님들이 참 많은 어려움과 아픔을 겪으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사랑하는 가족과 이별을 겪은 분도 계시고, 삶의 크고 작은 고비 속에서 이번 컨퍼런스를 준비해 오신 과정을 알고 있기에 더 마음이 아렸다. 샬롬이 깨어진 어그러진 세상과 삶의 여정 속에서, 끝까지 샬롬을 붙들고 묵묵히 자리를 지켜낸 간사님들의 조용한 섬김이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있는지를 이번에도 깊이 경험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그 수고를 우리 주님께서 반드시 칭찬해 주시고 위로해 주시길 진심으로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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