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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onal reflections & scribbles

Unwind

큰아들은 디스토피아 장르의 책을 좋아한다. 일부러 찾아 읽는 편은 아니지만, 읽어야 한다면 늘 디스토피아 소설을 골랐다.

이번 학기 영어 수업에서 작은아이는 The Giver를 읽게 되었다. 역시 디스토피아 장르다. 그리고 추가로 다른 책 한 권은 학생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고 했다. 아빠와 도서관에 가서 책을 골라오라고 했더니 너무 유치한(?) 책을 집어왔는데, 그냥 두었다. 그런데 본인도 읽어보더니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바꾸고 싶다고 했다. 그 후로는 도서관에 갈 시간이 없어서 어쩌나 하고 있었는데, 오늘 학교 사서 선생님께 디스토피아 책을 추천해 달라고 했던 것 같다. 늘 형을 따라 하던 동생이, 이번에도 형이 즐겨 읽는 장르를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한 듯하다.

작은아이가 집에 들고 온 책은 Unwind라는 소설이었다. 나는 처음 들어보는 제목이었고, 아이도 훑어보더니 혼자 읽기에는 어렵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저녁 식사 후 아이가 그 책을 같이 읽자고 했다. 영어가 아직 편하지 않은 상황에서 선교지를 철수해 돌아왔고, 첫 해는 ESL 학생으로 지낸 터라 체계적으로 영어를 배운 경험이 길지 않아, 영어 수업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진 듯하다. 그래서 The Giver를 읽을 때도 전날 집에서 나와 함께 첫 챕터를 읽고 학교에 갔던 경험이 있었고, 이번에도 도움을 받고 싶었던 모양이다.

책에 대한 사전 지식이 전혀 없었기에 아이와 함께 읽기 전에 조사가 필요했다. 제목만 봐서는 내용이 전혀 감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알아보니 이 책은 미래의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두 번째 내전이 있었는데, 그것은 낙태를 둘러싼 pro-life와 pro-choice 진영의 전쟁이었다. 전쟁이 끝난 후, 미국은 새로운 법안을 만들었고 그 이름은 ‘생명의 법안(Bill of Life)’이었다. 그 법에 따르면 아이가 잉태되면 반드시 출산해야 하고, 아이가 13~18세가 되면 부모의 선택에 따라 ‘unwind’될 수 있었다. 이는 ‘다른 방식으로 삶을 이어간다’는 의미지만, 소설 속에서는 주로 장기 기증을 통해서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을 뜻한다. 와, 이걸 중학생이 읽는다고? 정말 충격적인 설정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이에게 이 책을 정말 읽을 수 있을지, 주제가 무겁고, 보통은 더 성숙한 학생들에게 권하는 책이라는데 괜찮겠냐고 물었다. 아이는 감당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저녁 시간에, 우리는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그리고 첫 챕터를 소리 내어 읽어주었다. 모르는 단어 나오면 설명도 해주고, 상황을 이해하고 있는지 확인도 해가면서 읽어나갔다. 읽으면서 깜짝 놀라는 대목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고, 순간적으로 아이보다 내가 더 몰입해 재미있게 읽고 있다는 사실에 웃음이 났다. (참고로 애들 책이라 얕잡아 봤는데, 첫 챕터의 속도감과 긴장감은 정말 대단했다.)

첫 챕터만 읽었으니 많은 것을 이야기할 수는 없겠지만, 이 책은 분명 ‘인간의 가치가 어디에 있는가’라는 깊은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우리 아이, 과연 이 책 감당할 수 있을까? 함께 읽으며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이어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문제는 매일 저녁 아이와 함께 책을 읽을 시간적 여유가 있을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앞으로 2주 안에 다 읽어야 된다는데… 내 reading assignment들도 다 못 읽고 있으면서 ㅎㅎ)

덧붙임: 나중에 큰 아이한테 이 책 아냐고 물었더니, 이미 8학년 때 읽었다고 한다. 수업 시간에 읽었냐니까 그냥 친구가 추천해서 읽었다고… 흠.. 애들이 어떤 이야기들을 접하고 있는지 전혀 파악을 못 하고 있었네. 같이 이야기 나눠 봤으면 좋았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