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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오래전 블로그

“여성을 위한 설교”

Sep 24, 2016

내용이 궁금한 신간.

여성을 위한 설교”라는 제목의 책이 출간됐다. 2003년에 published 되었는데 한국에서는 13년이 지나 번역되었다. 원제목은 “Pearching That Speaks to Women”인데 제목이 주는 뉘앙스가 확실히 좀 다른듯.

SEBTS에서 M.Div 마치고 Gordon-Conwell에서 Th.M할 때 두 학교의 문화의 차이에 많이 놀랐었다. 두 학교 모두 복음주의 진영의 학교지만, 신학의 차이는 컸다. 특별히 여성의 리더쉽에 대한 기본적인 원리의 차이는 극과 극이었다. 첫 채플 시간에 여자 교수님께서 말씀을 전하실 때의 그 충격이란… 좋으면서도 새로우면서도 어색했던 그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무래도 그 당시에는 교회 안에서의 여성의 역할에 대한 SEBTS의 가르침의 영향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었던 것 같다.

교회 안에서의 여성의 역할은 지금도 나에게 큰 부담이다.

“페미니즘의 개화와 성 혁명의 진행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성은 교회 내에서 “제2의 성”으로 남아 있다. 여성이 교회 회중의 절반 이상을 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예전과 설교에서 침묵을 강요당하거나 소외되기 일쑤이며, 고작해야 요리와 청소 등 육체적 봉사에 동원되기 십상이다.”

책 소개에 이런 문장이 보인다. 슬.프.다.

요리도, 청소도, 육체적 봉사도… 모두가 거룩하고 귀한 섬김의 자리다. 하지만 이 짧은 글이 전달하고자 하는 상황이란… 느낌 아니까… 구구절절이 설명하지 않아도 안다.

지난 6월에 참석했던 TGC Women’s Conference 생각이 난다. 베드로전서 3장 말씀 강해 시간에 강해를 맡은 강사 자매가 남편에게 순종하라는 말씀을 domestic violence, 즉 가정 폭력에 대한 context 안에서 해석해 주었을 때, 그녀의 해석과 적용점에 대해 고마운 마음이 있었다. 가정 폭력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많은 여성들이 그 컨퍼런스에 참석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복음 때문에 그 폭력의 자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그녀의 메세지는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용기가 되었을 것이다. 만약에 울트라 fundamental conservative 라인의 강사였다면 주를 위해 참으라고 했을 것이 분명했을 것이다. 주를 위해 고난을 받으라고. 나의 고난을 통해 남편이 주님을 만날 것이라고… 이런 뚜껑 열리는 얘기를 했을 것이다. (주님을 만나는 것은 나의 고난을 통해서가 아니고, 궁극적으로는 주님이 겪으신 고난때문에 만나는 것이다.)

여성에게 customized 된 설교가 과연 필요할까라는 고민을 했었다. 여성 컨퍼런스에 참석하면서도. 하지만, 일반적인 교회의 가르침이 여성을 등안시 하거나 여성의 자리를 제한하는 현 상황에서는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어설픈 가르침으로는 안 된다. 교회 안에서의 여성의 위치나 역할, 정체성에 대해서, 남성 중심적인 교회가 지난 수십년, 수백년 가르쳐 온 것을 그대로 buy한 또 다른 여성 리더는 더 잘 못된 가르침과 말씀의 해석을 전달하기 때문에 결국엔 전혀 도움이 안 된다. 특별히 유교적 분위기의 한국의 교회는 더더욱 그렇다.

오래 전에 사모들을 위한 강의에 얼떨결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게다가 난 사모도 아니고, 사모라고 불리는 것도 안 좋아하는데…) 그때의 부글거림이란… 말로 표현이 안 된다. ㅡㅡ;;

신간에 대한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이어 이런 글을 쓰게 했다. 나는 점점 feminist가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 배경에 교회가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가 없다.

이쯤 되면 위의 글 제목을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바꿔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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