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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onal reflections & scribbles

브런치 & 계시록

1월 말부터 4월까지 짧은 브레이크 시간이 주어졌다. 수업이 없다고 해서 하는 일이 없는 건 아니지만, 과제가 없다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인다. ‘두 달간 절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쉴 테다!’라고 다짐했지만...

"투 데이즈 레이떠~" 😬

그렇다. 나는 이틀도 못 가 수업이 없는 두 달간 7주짜리 성경 공부 모임을 구성했다.

설날 연휴가 시작되는 주일 예배 후, 교회 가족들과 church-wide 식사 시간을 가졌다. 밥을 배식하시던 집사님 한 분이 내게 밥을 퍼주시며, "선교사님, 이 교회에 오셨을 때부터 같이 성경 공부하고 싶었는데, 언제 할 수 있나요?”라고 하셨다. 나도 모르게 “2-3월에 시간적 여유가 있어요”라고 답하고 말았다. ㅎㅎㅎ 집에 돌아와서도 그 집사님의 말씀이 계속 떠올랐고, 하루는 그냥 버텨봤지만… to make a long story short, 결국 그렇게 새로운 성경 공부 그룹을 계획하게 되었다.

달라스로 이동 후, 성경 공부를 하고 싶다고 개인적으로 물어오셨던 몇 분들을 떠올리고 접촉해 작은 그룹을 만들고, 우리 집을 오픈해서 금요일 오전 "브런치 & 계시록" 모임을 시작하게 됐다. 30대 후반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세대가 모여 함께하는 공부는 좋을 줄 알았지만, 기대 이상 천배, 만배로 즐겁고 흥미롭다.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얻은 경험과 지혜가 모이니, 나눔이 깊어지고 말씀에 대한 공감과 이해가 더욱 풍성해진다. The wisdom and experiences each brings to the table are truly priceless. 어떤 이는 신앙의 여정을, 어떤 이는 살아온 세월 속에서 깨달은 지혜를, 또 어떤 이는 새로운 통찰을 나눈다. 그렇게 서로의 이야기가 더해질 때, 말씀을 배우는 과정이 더욱 생생하게 살아난다.

새벽 2-3시면 일어나 도넛 가게에 출근하고, 오전 7시까지 일을 마친 후 성경 공부를 위해 먼 길을 달려오시는 집사님 손에는 아침에 갓 구워낸 소시지빵이 들려 있고, 직접 만든 과일잼과 과일을 챙겨오는 손길도 있다. 이른 아침, 어린 자녀들의 도시락을 챙기고 등교시킨 후 분주한 아침을 뒤로하고 집을 나서는 엄마도 있고, 손이 커도 너무 커 7명이 먹을 요거트를 30인분어치는 들고 오는 친구도 있다. 😂 분주한 일상 속에서도 이 시간을 기억하고, 함께 만들어 가는 마음 하나하나가 참 귀하다.

나는 일주일 내내 ‘이번 주는 어떤 말씀을 나눌까?’보다는 ‘이번 주 브런치 메뉴는 뭐로 하지?’를 고민하고, 목요일 저녁이면 집을 치우고 빵을 굽고, 다음 날 아침 브런치 재료를 준비한다. 필리핀에서 살 때, 팬데믹 전까지 약 6년 동안 매주 집을 열어 갓 구운 빵과 정성껏 내린 커피를 나누며 말씀을 읽었던 모임이 떠오른다.

내가 평생 하고 싶은 일은 전혀 거창하지 않다. 내가 뿌리 내리고 사는 로컬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말씀으로 환대하는 삶을 사는 것. 그런 의미에서 이 작은 모임을 할 때마다 그 꿈이 계속 진행 중이라는 생각이 든다. 집이 크지 않아 더 많은 사람을 초대할 수는 없지만, 작은 리빙룸에 8명이 둘러앉을 수 있는 다이닝 테이블을 옮겨 놓고, 이런 occasion에 사용하려고 그동안 모아둔 찻잔을 꺼내고, 이 공간을 환대의 자리로 만드는 과정이 소박해서 더 따뜻하지 않을까... 내 스스로에게 말해본다.

필요를 느끼지 못 해 집에 제대로 된 TV를 구비하지 않았는데, 성경 공부를 집에서 하게 되니 허여멀건한 벽에 하나 걸어두면 시청각 자료를 나눌 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칠판 대신 사용할 수도 있을 테고. 집이 좀 더 교통이 좋은 곳에 있었다면, 이렇게 먼 길을 오시는 수고를 덜어드릴 수 있을 텐데… 그건 우리 형편상... 아쉽지만 어렵다. 그래서 이런 거리도 마다하지 않고 아침마다 달려와 함께하는 모든 분들이 소중하다.

“선교사님, 브런치 준비 너무 많이 하지 마세요. 힘드실까 걱정돼요.”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도 계시지만, 한 상 가득 정성을 담아 대접하는 기쁨을 내가 포기할 리가.

이번 주 금요일이면 벌써 세 번째 모임. 그런데 벌써 “다음 시즌은 언제예요?”라고 물어보신다. 이럴 때는 정말 시간이 넉넉한 사람이 되고 싶다. 언제든 available한 사람이고 싶다.

먹는 이야기만 했지만, 말씀에 대한 반응도 참 놀랍다. 계시록을 배우면서 나누는 이야기들을 들으면, 이분들이 내용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얼마나 서로에게 경청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동안 계시록에 대해 오해했었다면서, “계시록에게 미안하네요…”라는 말에 다 같이 빵 터져 웃었다. 모든 것이 새롭게 다가온다는 말에, 하나님께서 이 자리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셨다는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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