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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onal reflections & scribbles

1.5세 선교사

미주 한인 1.5세가 해외 선교사로서 부모와 형제를 떠나는 과정에는 또 다른 종류의 믿음을 필요로 한다. 내가 떠난 후에도 문화적으로나 언어적으로 늘 도움이 필요한 1세 부모님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큰 도전이다. 부모님 가까이에 형제가 살고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 형제에게는 평생을 두고 고맙고도 미안한 마음을 앉고 사는 선택이기도 하다.
 
사실 나에게 그 믿음이 있었기에 우리가 떠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 믿음은 떠나고 난 후에 비로소 요구되었었고, 배워나가야 했던 부분이었다. 부끄럽게도 내가 떠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때 난 여전히 immature 했었고, 이기적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주변에 1.5세 선교사들이 많이 없나? 착한 1.5세들.)
 
늘 씩씩하셨던 우리 부모님은 내가 (또는 동생이) 곁에 있을 때에도 최대한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으셨다. 아빠 주변에는 늘 영한 사전이 있었고, 해결해야 하는 중요한 편지나 문건을 접할 때마다, 아빠는 그 사전을 먼저 펼쳐 보시곤 하셨다. 그런 부모님에 익숙했었던 난, 내가 떠나도 우리 부모님은 괜찮을 것이라는 어떤 근거없는 확신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공부를 마쳐가던 즈음, 우리 부부가 선교사가 되기로 결정을 하고 처음으로 가졌던 시가족과의 모임에서 시아버님께서는 이제 공부도 마쳤으니 다시 메릴랜드로 돌아와 아버지의 일도 도우면서 가까이서 살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의 결정을 말씀 드리자 아버님께서는 어떤 망설임도 없이, "내가 그래도 예수 믿는다고 하는 사람인데, 내 자식이 선교를 간다는데, 그 길을 막을 수는 없다"라고 말씀하셨다. 난 그 순간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나는 지난 날의 나의 선택과 걸어온 길에 나로부터 요구된 어떤 대단한 희생이 있었다고 단 한번도 생각한적 없다. 아주 단순하게, 전적으로 내가 좋아서, 내가 가고 싶어서 떠난 길이었다. 하지만 나의 선택으로 인해 나의 형제와 부모는 우리를 위해 많은 희생과 어려움을 감내했음을 안다. 그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들의 지난 십여년의 여정이 가능했음을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나는 요즘 정신없고 분주한 재정착 과정 중에 상당히 잔잔하고 조용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많은 고민과 생각들로 밤을 세우고, 내 존재의 의미, 앞으로 나의 갈 길에 대해도 생각하고, 막연함 속에 느끼는 많은 염려들로 머리를 채울 때도 많다. 쉽사리 방전 상태이기도 하고, 무기력하기도 하고, 모든 것이 재미없기도 하다. 그런데 또 그런 시간들이 싫어서 열심히 닌텐도 게임을 하기도 하고,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엄마가 챙겨주시는 집밥을 먹으며, 10년 넘게 안 보던 드라마도 보며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이젠 그런 행위들마저 시들해지는 것을 보니, shell에서 나올 때가 다가 오는 것 같다.
 
순간 순간 떠오르는 지난 날들에 대한 아주 랜덤한 생각들, 반추, reflection을 끄적이며 기록으로 남긴다. 힐링 프로세스를 위해서. 두서 없지만, 그냥 기록하기로. 좀 부끄럽기도 하지만.
 
**추가. 1.5세의 상황은 너무도 다양함으로 generalize 시킨 나의 thinking process에 시비는 정중히 사양합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reflection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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