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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onal reflections & scribbles

자발적 가난

  • "자발적 가난"에 대한 고민. ing.
  • 이게 가능할까? 크리스쳔이라면 모두가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이런 저런 생각을 꽤나 오랫동안 해왔는데, 결국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라는 사실을 뒤늦게야 말씀을 통해 확신할 수 있었다. 나에게는 깨나 의미 있는 aha! moment이었다.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부요하나, 여러분을 위해서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그것은 그의 가난으로 여러분을 부요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8:9 (NKSV)
For you know the grace of our Lord Jesus Christ, that though he was rich, yet for your sake he became poor, so that you by his poverty might become rich. 2 Corinthians 8:9 (ESV)
 
Paul gives a reason for their giving generously. He describes the grace of Christ—he was rich (in divinity) but became poor (in the incarnation) in order that the church in Corinth might become rich. Paul’s logic is simple; if Christians have received kindness from Christ, they ought to give kindness (see 1 John 3:17). [from Lexham Context Commentary: New Testament]
  • 물론 위의 말씀은 신적 존재가 인간의 자리(incarnation)로 voluntarily 그리고 willingly 내려온 삶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라, 이것이 함의하는 것이 어느 레벨까지 적용될 수 있는지는 더 고민이 필요한 부분 같기는 하다만. (by the way, 이번 advent 기간에 이 부분을 좀 더 묵상해보고 싶다.)
  • 나의 선택적 또는 자발적 가난이 그냥 내 삶의 simplicity, 만족, happiness로만 결론지어진다면, that is big no, no. 다른 이의 풍요로움과 풍성한 삶을 위해... 그렇게 귀결된다면... 감히 Jesus-like 삶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 나의 시간, 에너지, 자산, resource 등등 이 덩어리들을 어떻게 부풀릴 수 있을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know-how 관련 콘텐츠가 넘쳐나는 이 시대에, 자발적 가난? 무슨 그런 트렌드를 역류하는 발언이냐고 할 수 있지만, 그래도 우리가 정말 다른 사람들이라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는 부분 아닐까?
  • 부요한 이 미국 땅에 돌아와 주변을 돌아보니, 동남아 섬나라에서 살 때는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던 삶의 여러 영역들이 나를 bother 한다. 우리 가족이 살 집, 발이 되어줄 자동차, 4계절 바꿔 입어야 하는 옷가지, 아이들의 교육 방법, 등등... 사역지에서는 선택의 폭이 좁았기에 상대적으로 심플한 삶을 유지할 수 있었고, 모두가 고만고만했기에 누구와 딱히 비교할 필요도 없었던 삶이라 좋은 부분도 있었는데, 지금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엇이 내 삶에 커다란 turbulance를 일으키고 있다고 해야 할까나. 죽을 만큼은 아니지만 상당히 불편. 
  • 아이들이 새로운 동네를 지나갈 때면 quick observation 후에 여기는 fancy 하다며 부자 동네냐고 묻고, 다른 이들의 집을 방문하면 우리도 이런 좋은 집으로 이사 가자고 하고, 점점 더 눈에 보이는 것들에 대해 질문하고 요청하는데, 부모로서 어떤 반응을 해줘야 할지 고민이 될 때도 있다. 
  • 아이들과 자발적 가난에 대해서 논할 수 있을까? 의미 있는 대화가 가능할까?
  • 재정적 능력이 뒷받침돼서 아이들을 위해 좋은 학군으로 이사를 가고 좋은 학교를 보내야 이 사회에서 낙오하지 않고 엘리트 그룹으로 살아가게 할 수 있는데, is that what I really want for my children? 과연 그것이 아이들에게 베스트를 제공하는 것일까? 우리 아이가 그렇게 살 수 없다면 난 실패한 부모인가?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가끔은 내가 내린 결정이 옳은 것이었나 자문하게 된다.
  • 또 다른 생각 하나.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평생 벗어날 수 없는 가난의 굴레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생존해야 하는 사람들을 선교지 이웃들을 통해 많이 봤던 나로서는, 그들에게는(그들이 기독교인이라도 할지라도) voluntary poverty라는 것은 논할 수도 없을 것 같다. 당장 오늘 저녁 찬거리를 위해 바로 지금 열심히 일해야 하는 그들의 고단한 삶에 대한 예의가 아닌 거 같다. 
  • 어느 정도의 결핍이 주는 room to grow와 창의성, 그건 인정한다. 그런데, 지독한 결핍과 가난은 사람을 망가뜨리기도 하기에. 그러면 voluntary poverty는 있는 자들의 배부른 고민인가? (minimalistic 삶에 대한 고민도 비슷한 맥락에서 생각해 보게 된다.)
  • 얼마 전에 접한 quote 하나. 자크 라캉이라는 프랑스 정신의학자이자 분석학자가 man's desire is the desires of the Other이라고 했다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삶. 자발적 가난에 대해서 생각하다 보니 그의 이 말이 떠올랐다. 어떤 맥락에서 그런 말을 했는지 구체적으로는 모르겠지만, 결국 우리가 바라고 원하는 삶은 모두 상대적인 걸까? 
  • 자발적 가난은 있어본 사람만이 실천할 수 있는 것일까? 마치 내가 보아왔던 많은 미니멀리스트들의 삶이 이미 그 선택 이 전에 넘치는 풍요를 겪은 후에 만들어진 삶이라는 생각을 해볼 때... 모든 그리스도인들과 나눌 수 있는 주제는 아닐지도 모르겠다. 이것도 교만일 수 있지만. 
  • 이면지에 끄적여본 오늘의 "잡"생각들을 여기 옮겨본다. 생각의 확장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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