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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onal reflections & scribbles

The Making of Biblical Womanhood / 처치 걸

엄청난 몰입도를 갖고 읽을 수 있었던 책이었다. 베일러 대학의 배스 앨리슨 바 교수의 교회에 대한 경험과 신앙의 여정, 학자로서의 갈등이 전혀 남의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역사 학자로서 교회의 역사 속에서 “성경적 여성상(biblical womanhood)”이 만들어진 과정을 설명한 것이, 이 이슈에 대한 나의 이해도를 높이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주로 신학적, 성경 해석학적인 관점에서만 생각한 이슈였는데 말이다.
보통 어둡게만 다뤄지는 중세의 역사 속에서 별처럼 빛났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물론, 성지 순례 길에 오르면서 아이들을 바닷가에 남겨두고 떠난 Saint Paula의 이야기는 동의되지는 않았지만 (fabulized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만), 전에 들어보지 못 한 교회 역사 속의 여성의 이야기는 언제나 전투력(?)을 상승시킨다. 종교 개혁의 회색 지대로 여성의 역할과 위치가 가정 안으로만 국한된 것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성경이 사회를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 사회가 초기 근대 기독교인들의 성경 해석 방식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도 흥미롭고도 놀라운 포인트였다. 최종원 교수님 수업 생각도 나고.
개인적으로는 성경 번역에 대한 역사를 다룬 점이 흥미로웠다. 긴 교회의 역사 속에 성경 해석과 번역을 담당했던 남성들의 입김을 무시할 수 없고, 그것이 역사적인 상황과 맥락 속에서 어떤 해석과 번역을 선택했는지 아는 것은, 내가 말씀을 해석하고 번역하는 일에 좀 더 촘촘히 살펴봐야 할 요소들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했다. (현실적으로 내가 성경 공부를 인도할 때 영어 번역으로 어떤 번역본을 사용해야 할지 고민하게 된 지점이기도 하다.)
그녀가 책에서 여러 번 언급하는 Southeastern 침례 신학교와 당시의 총장 부부였던 페이지, 도로시 패터슨에 대한 이야기는 나도 너무도 잘 알고 경험한바이기도 하다. 내가 그 학교에서 M.Div 과정을 하는 동안 성경의 권위 있는 해석이라는 무기로 수많은 여성 학생들의 은사와 부르심과 존재 자체를 무시하고 조크로 승화시키는 역겨운 경험은 수업 시간은 물론 매주 있었던 채플 시간에도 종종 있었다.
그것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남성 학생들과, 그런 메세지에 세뇌 당하는 여성 학생들 사이에서, 몇 안 되는 동양인 여학생이었던 나는 ‘과연 내가 뭘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자주 했었다. 실제로 난 학교에서 M.Div 과정 중에서 Advanced Biblical Studies 전공으로 졸업한 첫 여학생이었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책에서 언급한 그대로) 설교학 수업을 들을 수 없었다. 그때는 상당히 기분이 나빴지만, 지금은 설교에 대한 그 어떠한 수업도 듣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 생각한다. 성도들에게는 익숙한, 정형화된 설교는 할 수 없을지 몰라도, 나만의 방식을 (비록 힘들더라도) 만들어 갈 수 있었다는 것은 나에게 더 큰 자유를 주었다.
이러한 와중에 감사하게도 내 주위에는 나의 은사와 재능을 인정해 주시는 목회자들과 사역자들이 계셔서 여러 방식으로 교회 내에서  말씀을 가르칠 수 있었다. 하지만, 꽤나 오랫동안 그 자리가 온전히 내 자리 같고 편하게 느껴졌다고는 말할 수 없겠다.
M.Div 졸업 일 년 후, 같은 학교에서 Th.M 과정에 입학 허가를 받았다. 계속해서 동일한 학교에서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지만, 마음을 바꾸어 Gordon-Conwell에 가기를 결정했을 때, 나에게 추천서를 써주신 교수님께서 egalitarian view를 지지하는 교수들이 가르치는 학교로 가는 것에 대한 우려를 표현하신 적이 있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책에도 언급이 되는 “I Suffer Not a Woman”의 저자 Catherine Clark Kroeger 교수님이 당시 고든 콘웰에 계셨었다.) 그때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하지만, 학기 첫날 채플 시간에 여성 교수님께서 말씀을 전하셨는데, 내 평생에 처음 있는 일이라 그 신선한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너무 좋으면서도 너무도 생소한 경험인지라 프로세스 자체가 힘들 정도였다.
이 학교를 재학 중에 얻은 가장 큰 선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이곳에서 만난 교회 언니들, 여성 사역자들과의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 각개전투에 익숙한 독립군 같은 우리들이지만,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어도 지속적인 연대와 응원이 가능할 수 있었던 작은 시작이 바로 이 학교를 통해서다. 내가 학위를 받은 것보다 더 중요한 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하지만 학교를 떠나 선교사가 되어서도 큰 변화는 없었다. 선교지에서도 내게는 오직 여성과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성경 가르침만이 허용되었다. 보수적인 선교 공동체는 나의 은사와 부르심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그럼에도 생존을 위해(부르심 따라 살 때 가장 행복한 것 아닌가) 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했고, 나의 길을 갔지만, 외로웠고 힘들고 긴 싸움이었다.
교회에서 딤전 2장 후반부 구절을 설교할 일정이 잡혀있다. 간헐적 설교자로서 여전히 설교가 익숙하지 않다. 게다가 이 본문에 대한 준비는 다른 본문들에 비해 더 무겁고 심각하게 다가온다. 하지 말까도 여러 번 생각했지만, 교회 내에 여성으로서 자신의 은사와 리더십을 맘껏 발휘하지 못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들을 위해서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성경 해석이 옳다고만 믿기 때문이 아니다. 나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을, 내 신앙의 후배들에게는 경험케 해주는 것이, 그들이 자신의 부르심을 찾아가는 길에 작은 응원이 되지 않을까 하는 바람에서다.
이 책을 읽은 후, 이 책에 대한 수많은 비평의 글들을 읽었다. 배스 앨리슨 바 교수님의 용기있는 글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추가 내용] "Biblical womanhood"라는 term을 상호보완주의(complementarianism)의 교과서와 같은 "Recovering Biblical Manhood and Womanhood"에서 가져와 technical term처럼 사용하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번역을 좀 다르게 했어야 하지 않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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