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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onal reflections & scribbles

지극히 개인적인 2022 코스타 후기 (2)

내 생애 첫 코스타는 1997년이었다. 부모님을 따라서 이민 온 지 5년 차 1.5세의 삶에 커다란 터닝 포인트가 되었던 사건이었다. 미국인도, 한국인도 아닌 애매모호한 정체성을 가지고, 여기도 저기도 끼지 못하는 "끼인" 세대로서, 삶의 방향과 목적 상실의 삶을 살던 나에게 코스타는 eye-opening 한 경험을 하게 했었다. 매 집회마다 왜 우는지도 모르는 눈물로 눈이 퉁퉁 부어 있었고, 좋은 강사님들의 말씀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열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물론 코스타가 내 몸에 딱 맞는 옷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미국에서 옷 사 입을 때 느낌. 맞는 것 같지만 좀 이상한 핏). 당시 코스타는 석사 이상의 유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집회였고, 1.5세 이민자의 자녀 출신 학부생이었던 나는 그 안에서 조금은 겉도는 정체성을 갖고 있었다. 시간이 많이 흐른 후, 선교지에 있을 때 코스타의 방향이 코리안 디아스포라 청년에게 맞춰졌다는 소식을 듣고 남편과 함께 기뻐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고 나서 2018년도에 코스타를 참석하게 되었는데, 그때의 예배를 잊을 수가 없다. 마치 딱 맞는 옷을 입은 것만 같은 예배의 경험이라니... 참으로 처음으로 느끼는 감정이었다. 당시의 찬양팀 디렉터가 김재우 선교사님이었다는 사실도 우연의 일치는 아닐 것이다.
 
이번 코스타에서 참석자들과 개인적으로 만나거나, 또는 식사를 나누며, 내가 경험했던 minority feeling에 대해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었다. 한국어도, 영어도 제대로 되지 않는 나는 이도 저도 아닌 모든 것을 잃은 사람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 반대로 이것도 저것도 모두 갖고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고, 경계인의 삶을 살았기 때문에 양쪽을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나의 경험들이 참석자들에게 용기를 주고, 힘이 되었다는 사실은 그 후에 알게 된 일이다.
 
젊은 여성 참석자들이 개인적인 만남을 요청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나는 상담을 하는 사람도 아닌데, 왜 만나자고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들의 목적은 의외로 간단(?)했다. 그냥 내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싶은 것이었다. Why? (이것은 지금도 계속되는 질문이고 고민이다.)
 
한 여성 참석자가 깨알 같은 글씨로 편지를 써서 나에게 전했다. 코스타에 오기 전에 써서 들고 온 편지 같았다. 지난해에 나와 함께 코스타 톡과 팔로업을 했었고, 올 해도 코스타 톡을 함께 했던 분이다. 편지에는 젊은 여성 크리스천들에게 좋은 신앙의 선배, 롤모델이 되어 달라는 부탁의 내용이 있었다. 그 편지를 읽고는 '아, 내가 포장이 아주 잘 되어 있구나. 빨리 도망가자'라는 생각이 들었다가, 다시 생각을 고쳐 '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지?'라는 고민에 접어들었다. 성격이 별로라서 롤모델은 진짜 아니고, '샘플'같은 삶이라도 살아보자라는 생각과 함께.
 
공항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던 이유는, 이제야 비로소 내게 주어진 경계의 삶에 미약하게나마 뿌리를 내렸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여성이기 때문에, 아시안이기 때문에, 엄마이기 때문에, 그 어느 곳에도 belong 할 수 없었고 투명인간과 같은 삶의 긴 시간의 끝에, 드디어 나 스스로 나의 정체성을, 그리고 또 경계인의 삶을 제대로 embrace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경계에서 꽃을 피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의 rambling을 들어준 참석자들과 간사님들과 강사님들이 고마웠다. 그들은 몰랐겠지만 나에게는 마치 긴 상담 세션을 받은 것과 같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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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be continued. hopeful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