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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onal reflections & scribbles

여성 수련회 후기 (2)

후기글 마무리

- 정말 시작이 반일까? 말씀의 기본 방향만 결정을 하면 그다음은 뭔가 술술 풀릴 줄 알았지만, 세 번의 말씀을 준비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내가 highly productive 한 사람이 아니기도 해서, 뭔가를 할 때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간이 좀 (심하게) 넉넉해야 하기도 하지만, 뭔가 쉽지가 않았다. 멀티가 안 돼서 더더욱. (그때 네팔에 계신 선교사님들을 위한 지혜서 성경 공부를 인도하고 있었고, 위클리프 내에서 새로운 사역 관련 일들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다른 일들과 병행하면서 하는 게 나만 어렵나? 게다가 엄마로서 mom switch가 쉽사리 on & off가 잘 안 된다. 아이들이 없는 시간에 일하면 된다고 하지만, 아이들이 없을 때 일만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시간 관리가 쉽지 않다. 어설픈 워킹맘의 현실.

- Plus, 지난 10년을 동남아 섬나라 지방 도시에서 살았던 내가 뉴욕 한복판에서 사는 분들께 얼마나 relevant 한 메시지를 전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되었다. 개인적으로 내게는 몇 년을 경험적으로 배우게 된 말씀들이었는데, 수련회 참석자분들께는 뜬 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들리면 어쩌나 하는 고민이 들었다. 하지만, 내게 없는 이야기, 경험하지 않은 이야기, 고민하지 않은 이야기는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 그러면서 든 생각은, 보통 수련회를 인도하시는 강사님들은 어떻게 준비를 하시는지 그게 궁금했다. 주변에 이런 일을 하는 여성 사역자들이 있으면 현실적인 조언도 듣고 물어보고 싶은 것도 많은데, 그런 사람이 없다, 없어! 탁월한 선배 언니들이 사역자로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지만, 그들에게도 이런 기회는 자주 오지 않고, 오히려 사역의 길이 막히는 경우가 훨씬 많다 보니 보고 배울 수 있는 샘플 언니들이 가까이 없다는 이 현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여성 사역자들은 각자도생 하는 경우가 많으니, 그냥 기도 부탁 많이 하고 열심히 준비하는 수밖에 없었다.

- 수련회 기간에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정체성'에 관한 것이었다.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의 정체성.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에 대한 이야기. 실제로 듀스의 노래를 찾아서 여러 번 들어봤었는데, 오! 가사가 은근히 성경적(?)이다. 결혼을 하고, 아내라는 새로운 정체성이 주어지고, 출산과 육아를 통해 엄마라는 새로운 정체성이 입혀졌을 때, 그게 생각보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 나만 몰랐었나? 어느 순간 나는 nobody가 되고, 나의 정체성이 남편으로, 아니면 자식에 의해 define 되는 것이, 나만 이상하고 어색했었나 말이다. 무엇보다 이 여정을 하나님과 함께, 말씀 안에서 풀어볼 기회는 있었는지...

- 이런 의식의 흐름으로 세 번의 말씀을 준비했고, 그 과정 중에 떠올린 key word들은 이렇다: 하나님 나라, 하나님 나라 백성, 정체성, 여성, 여호와의 길, 다음 세대, 교육, The medium is the message, 삶 속의 성경 번역, 공평과 정의, 여호와의 길, 디아스포라, life as an exile, 결핍과 상실이 주는 유익, 새로운 정체성, 새로운 소명, 주변부/경계의 삶, 제국의 체제와 문화, 저항, 자발적 가난, 등등이었다. 이걸 말씀과 이야기로 잘 풀어내 보고자 했다.

- 첫 집회 시간을 기다리며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기억도 없다. 그냥 엄청 긴장한 것 밖에는. ㅎㅎㅎ 찬양 인도하신 전도사님께서 뒤에 숨어있던 나를 일으켜 세우셔서 축복송을 불러주셨다. 모두의 손이 나를 향한다. 아... 올 것이 왔구나. 최대한 자연스럽게 행동하자. ㅎㅎㅎㅎ (그러면서 속으로, 노래야, 빨리 끝나라!) 앞에 서기 전에 미리 눈이라도 한두 번 맞춰보고 인사하고 따뜻한 환대를 받아서 감사했지만, 성향을 거스르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았다. 이런 일에 자연스러워지는 날이 올까?

- 주 audience가 여성인 경우에 몇 가지 필터가 바로 제거되고 편하게 전달할 수 있는 메시지들이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물론 중간중간 목사님들과 장로님들이 계셨는데, 최대한 눈을 피하고 ㅎㅎㅎ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비슷한 경험을 공유한다는 것 자체가 힘이었다. 몇 가지 단어만으로도 바로 engage 되는 느낌이 새로웠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인으로서 갖는 자녀 양육에 대한 에피소드와 고민을 나눌 때는 부가적인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척하면 착하는, 공감대! 눈빛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 자체로 힐링이었다. 무엇보다 말씀 듣는 훈련이 잘 되어 있는 공동체답게 말씀에 보여주신 진지한 자세만으로도 힘을 얻었다. 듣. 보. 인 나의 이야기를 경청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 일반적으로 여성 수련회에서 기대할 법한 본문들이 아니었다. 창세기 18장, 에스겔 1장, 요한계시록 18장에서 본문을 뽑았으니. 시작하기 전까지도 이래도 되는지 확신이 없었던 것 같다. 나의 준비는 늘 부족하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했고, 그저 하나님께서 일하여 주시기를 구할 뿐이었다. 이 본문들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살아내야 하는 공평과 정의의 삶, 위기의 시간에도 주어지는 새로운 소명, 제국의 문화를 저항하는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필요하고, 도전이 되는 말씀이었기를 기도할 뿐이다. 

- 전한 말씀 외에도 몇 가지 질문들을 갖고 돌아온 여행이기도 했다. 남성이 주를 이루는 교회의 리더십이 여성을 위한 행사를 준비할 때 (물론 decision making group 안에 소수의 여성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과연 어느 정도의 sensitivity를 갖고 여성 성도의 필요를 파악하고 행사를 준비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이번 수련회는 그 부분에서 많은 것을 시도한 것 같아 희망이 보였다. 자녀들과 완전히 분리되어서 오로지 주어진 시간에 집중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든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안다. 전에 선교지에서 여성 수련회를 참석자로 경험하기도 하고, 기획도 한 경험이 있는데, 여성의 의지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체험으로 안다. 참석자 분들이 집회를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신나(?)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 10년 만에 혼자서 이렇게 시간 보낸다"라고 하신 분도 있었으니까. 분주한 일상(가족 포함)을 잠시 떠나 깊은숨을 쉴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 그 중요성을 알아주신 분들께 감사한다.

- 또 다른 질문은, 혹시라도 여성 강사가 불편하지는 않으셨을까라는 것이다. 준비하는 측에서 나를 care하시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수련회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남성 강사들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수련회를 준비하는 남성 사역자들이 편하게 사역 이야기도 나누고 할 것 같은데, 여성이 강사일 경우가 흔치 않은 일이라 서로 어색할 수 있을 것 같다. 역시 교회의 이름답게 이런 일도 프론티어 정신으로 하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ㅎㅎㅎ 나도 어떤 면에서 내가 의도한 바는 아니나 프론티어가 된 것 같았고. 참고로 난 사역자분들하고 비교적 얘기도 잘 나누고 한 것 같은데, 내 착각인가? 내가 자라온 환경이 친척들도 남성 사촌 형제가 더 많고, 신학교 다닐 때도 남성이 주가 되는 수업을 주로 들어서, 남성들한테 막 주눅 드는 편은 아닌데 (다행인 건가?) 그렇다고 익숙한 것은 아니니까. 

- 솔직히 overall 최근 들어 했던 일들 중에서 가장 힘들었던 일이었다. 시작부터 끝까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부족하겠지만. 수련회를 마치고 난 다음 날 새벽에 일어나 Lyft를 타고 공항으로 가는 내 몸은 천근만근 무거웠다. 별로 든 것도 없는 수트케이스는 왜 이렇게 무겁게 느껴지는지. 뭘 하든 체력부터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달라스-뉴욕 비행시간이 4시간이다. 은근히 멀다. 비행기에 보딩 후 언제 이륙했는지 기억에 없을 정도로 바로 기절했는데, 착륙해서 깼다. 원래 계획은 집에 와서 몇 시간 쉬고 오후에 있는 주일 예배에 참석할 예정이었는데, 난 집에 도착하자마자 뻗어버렸고 그날 늦은 오후까지 일어나지 못했다. 내 기억에 배고파서 일어났던 거 같다.

*후기를 써놓고도 한동안 이 글을 포스팅할 수 없었다. 10.29 참사를 접하고, 이런 글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10월 31일 저녁, 우리 집 작은 아이는 그래도 미쿡에서 살게 되었는데, trick-or-treaing이라는 게 무엇인지 궁금하다고 경험해 보고 싶다고 해서, 뼈다귀 그림이 있는 잠옷 차림으로 동네를 돌았다. 묵직해진 사탕 가방을 들고 행복해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만감이 교차했다.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 애통하는 마음으로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분들을 위해 기도한다. 아직도 회복 중에 있는 분들의 몸과 마음이 치유되기를 기도한다. 그 현장에서 이리 뛰며 저리 뛰며 도움의 손길을 내민 분들의 마음에도 너무 큰 트라우마가 남지 않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