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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오래전 블로그

말씀 공부

Jan 19, 2017

예전엔 되고 지금은 안 되는?

북클럽 준비하다가 오래전 노트를 뒤적인다. 한창 싸이월드가 유행이었을 때, 거기 어딘가 적은 기억이 난다. 그때는 hashtag가 없던 시절이라 과연 찾을 수 있을까 했었는데, 우왓! 찾았다.

자그마치 8년 전 포스팅이다. 그때는 애도 없고 (아니, 정확히는 J 임신 중이었구나) 말씀 묵상을 이렇게 여유 있게 원어 사전 뒤져가며 럭셔리(?)하게 했었다는 사실이 놀랍고, 지금은 영어든 한국어든 뭐라도 후딱 읽을 기회만 생겨도 만족한다는 것이 좀 거시기하다. ㅡㅡ;;

아무튼, 필요한 자료를 찾아서 좋으면서 묘한 기분.


 

Lamentations 2:9

계속되는 예레미야 애가 묵상.

처참하게 짓밟힌 도성 예루살렘의 모습이 계속해서 저자의 입을 빌어 묘사되고 있다.

그 아름답고 영광스러웠던 도성이 어쩌다가 이런 상황까지 맞이하게 되었는가… 는 열왕기상, 하를 읽으면 알 수 있지만, 
이런 비참한 상황 속에서 위로자 하나 없는 상황이 슬픈 노래를 부르는 저자를 더 슬픈 게 만든다.

오늘은 2장 9절 말씀이 가장 눈에 들어온다.
특별히 영어나 한글로는 catch 하기 어려운 히브리어 단어 두 개:

Torah(תּוֹרָה)&Hazon(חָזוֹן)

이 말씀을 읽자마자 바로 잠언서 29장 18절 말씀이 떠올랐다. 히브리어 성경을 찾아보니 역시나 똑같은 두 단어가 등장한다.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말씀(=율법)과 계시에 대한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하나님의 율법의 말씀을 떠나 불순종의 삶을 살았던 이스라엘은 결국 방자하게 살았고 (NLT 성경은 ‘run wild’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결국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히 끊어져 버려 그분의 어떠한 도움의 손길도 느낄 수 없는 상황으로 떨어져 버린 것이다. 예언자들까지 하나님으로부터 어떠한 계시도 찾을 수 없는 상황까지 와버렸으니…

이 “계시”라는 단어는 개역개정에는 “묵시”라는 표현으로 번역되었고, 영어로는 종종 “vision”으로 번역되었는데, 원어적인 표현은 NIV의 “revelation”이 더 나은 번역이 아닌가 싶다. 굳이 literally 번역을 해보자면 “revelatory vision”이라고 해야 할까? 대학 시절 친구들과 종종 나눴던 대화의 토픽 중에서 “너는 비전이 뭐야?”라고 대화의 꽃을 피우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런 비전하고는 어쩌면 거리가 좀 먼… 내가 막연히 꿈꾸는 것이 아닌, 하나님이 품고 계신 그분의 뜻이 우리에게 드러난/나타난 것이 “hazon”의 뜻이 아닌지…

말씀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뜻은 더 이상 보이지도 들려지지도 않는 것이 되어 버렸다. 결국은 삶의 지침서가 없으니 “run wild”한 삶을 살 수밖에 없어지는 것. 그래서 잠언의 저자는 율법(“Torah”)을 지키는 사람은 복을 받는다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구약 당시에는 예언자들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아래 사는 우리들은 성령님을 통해서 말씀을 깨닫고 그분의 “hazon”을 늘 깨달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다. 말씀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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