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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오래전 블로그

10년, 그리고 새로운 출발 (2)

Nov 15, 2017

(벌써 이야기가 많이 길어졌지만 to make a long story short) 우리의 사정을 아는 분들의 기도와 격려로 우리는 이 시간을 비교적 잘 통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실적으로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그저 삶의 평안을 찾았을 뿐... (그거면 된 건가?)

급변하는 사역의 현실 속에 정신을 못 차리던 중 미국 본부로부터 곧바로 새로운 사역이 연결되지 않으면 12월 중으로 본국으로 소환이라는 연락을 받게 되었다. 아... 타임 테이블마저도 우리 편이 아니다.

수만 가지 생각이 들었다. 지금 철수하면 어떻게 되는 건가? 살림살이 다 처분하고 미국 들어가면 어디서 사나? 아이들 학교는 어쩌나? 이렇게 빠른 시간 내에 정리가 가능할까? 이렇게 떠나게 되면 내쫓기는 기분인데... 오랫동안 아픈 기억으로 남을 것 같은데... 주님의 뜻은 어디에...?

그러면서 또 한 편으로는 이제 다른 곳으로 옮겨서 공부하라는 말씀인가? 그렇다면 남편의 사역은 어떻게 되는 건가?... 어느 것 하나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들과 고민들의 연속이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남편은 어떻게든 아이들이 이번 school year를 이곳에서 마치고 proper 한 closure를 가질 수 있도록 단기성이라도 이곳에서 섬길 수 있는 사역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곳저곳에서 자신의 가진 은사로 섬길 수 있는 곳을 알아보고 인터뷰도 하고 CV, 포트폴리오 등을 보내곤 했지만, 일의 진행이 우리가 생각하고 기대하는 것만큼 빠르지 않았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다린다는 것. 말이 쉽지... 시편 기자의 노래가 떠올랐다. I wait for the Lord.... But how long, O Lord?

우리의 상황에 대해 좀 더 proactively 반응할 필요를 느끼고, 나도 선교사님들과 미팅을 갖기 시작했다. 필리핀에서 성경 번역 사역만 20년 넘게 하신 분들이다. "내가 뭐라도 할 수 있는 게 없을까?" 묻기 시작했다.

필리핀 지역 성경 번역 사역 디렉터와의 첫 미팅은 그냥 그랬다.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현재 번역을 마무리하고 계신 선교사님 부부와의 두 번째 미팅은 좀 더 긍정적이었다. 나의 학업적, 사역적 여정에 대한 깊은 나눔이 있었다. 당신들은 결정권을 갖고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지만, 네가 꼭 박사도 하고 이 사역을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격려도 해주셨다.

그러던 중... 미국 인사과에서 또 연락이 왔다. 일의 아무런 진전이 없어 보이는 듯했던지, 12월 중 소환 가능성이 높으니 빨리 알아보라는 것이다. 으... pressure is on.

그리고는 그 이메일을 받고 불과 몇 시간 후, 지난달 남편이 인터뷰를 했던 사역 단체 담당자의 연락을 받았다. 희망이 안 보이네. 아... 여기는 아닌 것 같다. 이곳은 더 노력하지 말고 접자는 결론을 내렸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알려주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여겼다.

그 날 아침 우리 부부는 정말 심하게 다운됐었다. 남편은 사무실로 출근을 가고, 나도 A를 유치원 데려다주고 혼자 커피숍으로 향했다. 아... 우울해. 막 우울해질 테다.

남편도 일이 손에 안 잡히던지, 택시 타고 커피숍으로 온다고 연락이 왔다. 보통은 그러라고 했을 텐데, 마시고 싶은 거 있냐고 주문을 받아 내가 사무실로 배달을 가기로 했다. 난 남편에게 음식이든 음료든 배달을 한 적이 정말 한 번도 없다. 하지만 오늘은 착한 와이프가 되기로 했다. 그런데 남편이 커피를 주문한다. 어? 남편은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인생이 써서 쓴 커피가 댕겼나? 아무튼 모든 것이 이상했던 날.

커피를 들고 사무실에 도착해서 계단을 올라가려는데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부른다. 두 번째 미팅을 함께 했던 선교사님 부부와 전에 이사 오기 전에 살던 집 옆집에 살던 선교사님 부부가 함께 merienda 시간(필리핀 문화에서 중요한 간식 시간)을 갖고 계셨다.

빨리 남편한테 커피 배달해야 되는데 붙들렸(?)다. 옆에 엉거주춤 앉았다. 어제 집에 나왔던 뱀 이야기를 물어보시더니, 각자 자신들이 경험한 뱀 이야기에 웃음꽃이 활짝이다. 세탁기 안에서 나온 뱀 이야기, 아이들 바지 주머니 안에서 나온 뱀 이야기, 화장실 토일렛에 앉았는데 마주한 뱀 이야기, 등등... 나만 억지로 웃고 있었다. 오늘은 리엑션도 힘든 날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오랜 시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는 와이프를 찾아, 남편이 이층 사무실에서 내려와 뱀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우고 있던 선교사님들과 조우(?)했다. 남편의 얼굴이 어둡네. 느낌 탓인가.

To be continued...

(to make a long story short는 실패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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