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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오래전 블로그

“The Twelve” 12 소선지서 (3)

Dec 12, 2017

연말이라서 행사도 많고 모임도 많고 개인적으로 일도 많아서 소선지서 시리즈 연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바로 정리해서 기록하지 않으면 머릿속 기억도 같이 소멸된다는 이 슬픈 현실. 그래도 더 많이 잊기 전에 조금이라도 기록을 남겨보고자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지난 모임에서는 아모스서 2장에서 5장까지 함께 읽었다. 각자 개인적으로 함께 나누며 기도할 제목들이 있어서 이번 모임에서 성경 읽기보다는 나눔과 기도에 시간을 더 많이 할애했다.

  1. 요엘서의 마지막 부분(3장)이 하나님께서 모든 민족을 불러모으시고 그들을 여호사밧 골짜기로 데리고 가셔서 심판하시는 장면이었다. 3장 16절부터는 주님께서 "시온"에서 외치시고 예루살렘에서 큰소리를 내시는 장면을 묘사하는데, 바로 다음 책인 아모스서로 넘어가면 1장 1절에서 짧게 아모스의 소개와 시대적 배경에 대한 정보가 제공되고, 2절에 아모스의 선포 내용이 "주님께서 시온에서 부르짖으시면 예루살렘에서 큰소리로 외치시니..."로 시작한다. 요엘서에서 아모스서로 넘어왔지만, 주님께서는 여전히 같은 장소에서 같은 액션을 취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시간의 연속성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는 3절부터 이스라엘 이웃 나라들을 심판하시는 내용이 나온다. 요엘서 3장의 내용과 연속성을 볼 수 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성경을 chunk로 읽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꼈다.
  2. 아모스서의 시대적 배경은 호세아서와 비슷하다. 여로보암 2세가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시기인데, 북이스라엘이 가장 번성했던 시절이다. 여름 별장, 가을 별장, 상아(인도에서 수입한?), 많은 저택(3:15) 같은 것들이 책 속에 등장하는 것을 봐서는 그 시대의 leisure와 luxury의 수준이 끝판왕(?) 느낌도 살짝 든다.
  3. 그런데 이와 너무도 상반되게, 말도 안 되는 social injustice가 존재했다.
    • 가난한 사람들을 억압하고 빈궁한 사람들을 짓밟음 (4:1)
    • 법정에서 시비를 올바로 가리는 사람을 미워하고 바른말 하는 사람을 싫어함 (정의를 싫어함?) (5:10)
    • 가난한 사람을 짓밟고 (또 나오네) 그들에게서 곡물세를 착취 (벼룩의 간을 빼먹음) (5:11)
    • 의로운 사람을 학대하고, 뇌물을 받고, 법정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억울하게 함 (정의가 이루어지는 꼴을 못 봄) (5:12)
    • 어찌 현시대와 이리도 똑같은지!
  4. 이런 어마 어머한 문제의 해결책으로 하나님께서 아모스를 통해 전달하신 메시지가 너무도 놀랍다.
    • "너희가 살려면,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아라." (5:14)
    •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여라. 법정에서 올바르게 재판하여라." (5:15)
    • 한마디로 너네 이렇게 계속 살면 죽는다. 살려면 선을 행해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 살기 위해 선을 행해야 하는 삶은 도대체 어떠한 삶일까?
    • (음... 뭔가 이 부분 정리? 묵상이 더 필요한 것 같은데...)
  5. 아모스서의 5장 후반부에 나오는 내용이 이 책의 하이트라잇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 "나는, 너희가 벌이는 절기 행사들이 싫다. 역겹다. 너희가 성회로 모여도 도무지 기쁘지 않다." (5:21)
    • "너희가 나에게 번제물이나 곡식제물을 바친다 해도, 내가 그 제물을 받지 않겠다. 너희가 화목제로 바치는 살진 짐승도 거들떠보지 않겠다." (5:22)
    • "시끄러운 너의 노랫소리를 나의 앞에서 집어치워라! 너의 거문고 소리도 나는 듣지 않겠다." (5:23)
    • "너희는, 다만 공의가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가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게 하여라." (5:24)
    • 멸망의 심판 앞에서 살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돌이키는 것일까 (호세아 처음부터 계속된 메시지, Return!)?
    • 그것은 (종교적인 행위로서의) 더 많은 예배(제사)가 아니라, 삶으로 드려지는 진정한 예배, 공의와 정의를 실천하는 삶이었다.
    • 5절 전반부에 자주 등장하는 phrase가 있다. "너희는 나를 찾아라. 그러면 산다." (5:4; cf. 5:6, 8) 여호와 하나님을 찾는 삶이 뭘까? 더 많은 예배의 현장, 묵상의 자리, 기도의 시간... 이기도 하겠지만(종교적인 행위만이 아닌.. 진정한 만남과 교제의 자리라는 전제하에!), 공의와 정의가 이루어지는 자리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찾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닐까라는 나름의 해석을 해본다.

to be continued...

역시 나의 글빨은 내가 느끼고 깨달은 것의 반의 반도 표현을 못 하는 것 같다. 글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나... 그래도 시간 날 때,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생각이 다 정리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후딱 써 내려가자. 너무 잘 쓰려고 하면 아무것도 못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