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From 오래전 블로그

많이 늦은 미국 방문 후기 (4)

Aug 14, 2018

내가 요즘 폭풍 블로그 포스팅을 하는 것을 보니, 그동안 스트레스가 많기는 많았던 것 같다. 스트레스를 푸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그중에서 저널링이 나에게는 중요한 let out의 창구인데, 그걸 지난 6개월 동안 바빠서 못 했으니 쌓인 게 많은 게 맞는 것 같다. 프로세스 하고 싶었던 많은 생각들을 이제야 제대로 정리한다고 해야 하나.

좀 뒷북 같은 느낌이 있기는 하지만 선교사 인생 11년 만에 나름의 counter-cultural shock을 경험했다는 말은 결국 (물론,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내가 어느 정도 필리핀 생활에 익숙해진 부분이 많아졌다는 긍정적(?) 의미도 담겨 있는 것 같다.

이번 방문을 마치고 사역지로 돌아와서 느낀 점이 있다면, 내가 이 전보다 이 곳의 문화와 생활 방식, 저들만의 삶의 지혜들을 더 appreciate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여전히 불편하고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도 많이 있지만, 이들에게만 있는 고유의 생활 방식이나 skill들이 참 놀랍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아무리 미국의 소비문화와 넘쳐나는 recycle 쓰레기를 이야기해봤자, 이들의 눈에 보이는 나의 이 곳에서의 삶은 풍요롭고, 낭비도 많고, 절약 정신도 현저히 떨어질 것이 분명하다. 박스 종이 하나라도 폐품 활용을 하고, 이면지 하나도 그냥 버리는 적이 없고, 미국에서는 마구 버릴만한 플라스틱 통, 유리병도 새로운 아이템으로 재창조시키는 이들에게 나는, 삶의 스킬이 아주 많이 떨어지는 어리바리한 외쿡인 선교사일 뿐이다.

이들의 문화 안에 여전히 목사와 선교사를 존경하는 정신이 남아 있어서 어디 가면 뭐라도 되는 사람처럼 대우를 받으니 착각을 하기가 쉬운데, 생존을 이야기하자면, 솔직히 난 이들의 도움과 배려 없이는 이 땅에서 살 수 없는 사람이다.

길게든 짧게든 이 곳을 잠시 벗어나 바깥에서 이곳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것에 감사하다. 그리고 이곳으로 다시 돌아올 때마다 '아... 돌아가기 싫다'라는 마음보다는, '아... 그래, 이곳이 이런 것들이 참 좋았지'라고 새로운 발견과 깨달음을 주시는 것도 감사하다.

어찌 보면 난 이제 26년 전에 떠난 고국에서도, 이민자로 살았던 미국에서도, 그리고 지금 살고 있는 이 나라에서도 완벽하게 이방인이 되고야 말았다. 그런데, 이 땅에서의 home이 더욱더 불분명해지는 과정을 통해 얻은 것이 있다면, 하나님 안에서의, 그리스도 안에서의 나의 정체성이 더욱더 명확해져 간다는 것이다. 쉽지는 않은 과정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분명히 떠나봐야 알아지는 것들이 있는 것 같다.

to be continued...

(글을 마무리하다 보니, 이번에 소개받은 marginality라는 책! 그거 빨리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