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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오래전 블로그

많이 늦은 미국 방문 후기 (6)

Aug 31, 2018

코스타 전체 집회에서 수요일 오전 강의를 한 경험은 나에게 말로 이루 다 설명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말씀을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은혜였고, 혼자서 했다기보다는 많은 이들의 격려와 실질적인 도움 속에서 이루어진 협업의 결과물이었다.

맡은 시간이 다가올 수록 내 마음은 평안해졌고 참으로 잔잔했었다. 코스타 집회 장소가 바뀌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앞에 섰을 때 사람들의 얼굴이 이렇게 잘 보일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 할 정도록 모든 것이 클리어했다.

내가 무슨 전문적인 preacher나 강사도 아니고, 사실 어떤 대단한 delivery technique이 있는 사람도 아니니, 삼천포로 빠지지 않기 위해서 manuscript에 충실했다. 한마디로 그냥 쭈욱~~ 차근차근 읽어나간 것이다. 전에 유튜브에서 존 스토스 목사님이 강의하시는데 보니까 그분도 manuscript를 그냥 읽으시더라. 그래서 거기서 격려를 얻었다고나 할까. ㅎㅎㅎ

초반부에 사람들이 서서히 잠에 드는 것이 눈에 보였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바... 그런데 중간에 어떤 이야기를 하는데, 갑자기 잠자던 영혼들이 깨어나는 것을 경험했다. 푸하하하.. 거의 부활 수준이었다. 잠깐 깜박 잠이 들었다가 확 깨면 그 다음부터는 안 졸리는 법. 그래서 그런지 그 후로는 거의 대부분의 참석자들이 깨어계셨던 것 같다.

귀를 기울여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 그중 몇몇 강사님들의 얼굴, 눈빛들이 아직도 기억나는데, 신참 어린 강사에게 보내주신 응원의 눈길처럼 느껴져서 더 힘을 얻었던 것 같다. 그리고 별 볼일 없는 사람의 말씀 풀이를 듣게 하신 분이 다름아닌 하나님이신 것을 알기에 말씀 앞에 더욱더 겸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의 시간을 마치고 몇 몇 분들로부터 여러 feedback을 들었다. 어떤 목사님은 본인이 설교할 때 큰 소리로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씀해주시고, 어떤 분은 What a biblical theology!라고 코멘트를 주시고, 어떤 분은 계속 이런 자리에 서는 일을 하셔야겠다고 격려도 주셨다.... 흠.. 뭐랄까... 하나님께서 지난 수십 년의 시간에 대해서 응원, 칭찬, 격려,... 토닥토닥 해주시는 느낌을 받았다.

아, 한가지 더. 이건 나 자신을 위한 기록을 위해 남기는 것인데, 다바오를 떠나기 전, 함께 성경 공부를 하는 친구들과 서로를 위해 기도해주는 시간을 가졌는데, 그때 한 친구가 기도 후에 You will speak with authority!라는 말을 해주었다. 강의를 마치고 제일 처음으로 나한테 와서 인사를 전해 준 자매가 나에게 해 준 말은 "You spoke with authority!"였다. 감사하다. 주님은 그분의 일을 하신다.

미주 코스타 역사 33년 중에 내가 첫 한인 여성 전체 집회 강사였다는 것이 주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 그게 왜 하필 나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수많은 훌륭한 여강사님들이 계신데...), 다른 건 모르겠고, 개인적으로 의미하는 바는 컸다. 여성으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말씀 교사로서... 난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대한 고민들이 더 구체화되었다. 남편은 계속 공부를 더 해보라고 한다. 자신이 100% 서포트할 마음도 있다면서... (역시, 우리 남편은 먹고사는 걱정은 전혀 안 한다. 믿음이 좋은 건지 뭔지... ㅋㅋㅋ)

강의 후 조모임과 식사 시간, 상담 요청 등으로 정말 분주한 시간들을 보냈다. 공통적으로 자주 받은 질문들은 대체로 어떻게 하면 혼자 성경을 읽을 수 있고, 또 성경 공부는 어떻게 하면 되는가에 대한 나름 아주 진지한 질문들이었다. 내가 아는 범위 안에서 나눌 수 있는 것들을 나눴지만, 여전히 안타까움이 남는 부분이라면, 교회는 왜 말씀을 가르치지 않는가!에 대한 것이다. 비판적인 글을 쓸 생각은 아니다. 그냥 정말 많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래서 내 고민은 더 깊어진다. 성경 교사로서의 부르심이 있는데, 나는 그 부르심에 대해 어떻게 응답하고 반응해야 할까. 난 이곳 다바오에서 그저 무명으로 사는 주부, 애엄마인데... 기도하며 길을 찾아야 한다.

난 이제 이곳 다바오로 돌아왔다. 우리끼리 하는 얘기 중에, 선교사들이 잘 하는 것이 있는데, 그건 바로 치고 빠지기를 잘한다는 것이다. 내 진짜 정체가 탄로 나기 전에 어디론가로 가버린다는 거. ㅎㅎ 이곳에서 더 깊은 사귐으로, 섬김으로 나아가는 일이 남아있다. 그 일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수 있을지... 계속 묻는다. 그리고 소망하기는 이곳에서도 지속적으로 말씀을 전하고 나눌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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