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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오래전 블로그

시편 (3): 큰 그림

Sep 11, 2018

  1. "시편의 큰 그림"이라는 거창한(?) 제목으로 글을 시작해 놓고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제목이 너무 거창했나? 아... 힘들다. 모르겠다. 시편의 큰 그림. 안 보인다. 과연 볼 수 있을까?
  2. 시편 읽기가 두 달 째 진행 중인데 내 안에 뭔가 답답함을 지우기가 어렵다. 나눔도 어렵고, 이해도 안 되고, 그냥 잘 모르겠다. 시편이 이렇게 어려운 책이었나? 아니면 내가 너무 잘 읽으려고 하는 건가?
  3. 12 소선지서를 읽을 때는 그래도 각 책 사이의 어느 정도의 흐름과 연관성, 연결 지점들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시편은 그 방대한 내용 속에서 그냥 헤매고 있는 수준이다. 도움을 받아볼까 해서 자료들을 찾아봤는데 딱히 뭐가 좋은 건지도 모르겠다.
  4. 어쨌든, 지난번에 쓴 글과 연결을 시켜 생각을 해보자. 시편 1편과 2편에 대해서 말이다. 시편 1편은 내가 주일학교 시절에 암송 대회에서 외웠던 시편이라 개인적으로도 의미가 크다. 물론 그때는 이게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고 그냥 외우기만 했지만 그럼에도 좋았던 것 같다. M.Div 시절 히브리어와 구약 주해를 가르쳐 주셨던 Sailhamer 교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시편 1편의 역할은 시편 전체의 introduction의 역할을 함과 동시에, 시편 전체의 핵심 주제를 전달한다고 한다.
  5. 우리가 제일 자주 들어온 "복 있는 사람은... 주님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밤낮으로 율법을 묵상하는 사람"이라는 2절의 말씀에서 "율법"은 히브리어로 "토라(תּוֹרָה‬)"이다. 토라는 율법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지만, 더 넓게는 teaching, instruction이라는 의미도 있다. 그렇다면 주님의 토라를 즐거워하는 것, 그 토라를 밤낮으로 묵상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6. 시편 1편은 그런 면에서 시편 전체가 어떠한 책인지를 말해주는데, 시편은 사람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문, 찬양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토라"로서의 역할을 감당한다는 사실이다. 시편을 읽을 때, 각각의 시를 "토라"를 대하듯 읽으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instruction, teaching으로서의 시편. 조금 다른 perspective를 요하지 않나? 그리고 그 안에서 "의인"의 길, 삶의 방식들을 발견해야 한다는?
  7. 시편 2편은 1편에서 표현된 핵심 주제와 무관해 보이는 듯하다. tone of voice가 완전히 바뀌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시편 2편은 1편의 부록(?)이다. 그래서 두 시를 함께 묶어서 이해해야 한다.
  8. 시편 2편은 사무엘하 7장에서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으신 메시야에 관한 언약이 시라는 장르를 통해 reiterate 된 느낌을 받는다. 흥미로운 사실은 1편에서는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라면, 2편에서는 하나님께서 거룩한 산 시온에 세우신 왕, 그에게로 피하는 자가 복이 있는 자라고 한다. 영문으로 How blessed are all who take shelter in him (NET). 안타깝게도 이 부분이 클리어하게 번역된 성경이 잘 없는 듯하다. 2편 마지막 내용과 메시야/왕에 대한 연결점이 좀 희미하다.
  9. 토라와 메시아-왕, blessed life, 의인의 삶... 이 모든 것들이 entermingled 된 내용이 시편 전체에서 다뤄진다는 말인데, 시편을 천천히 읽어나가면서 희미하게나마 조금씩 발견하는 것이 있다면, 시편 1편과 2편의 내용이 각 각의 시편 안에서 조금은 다른 상황을 통해, 다른 표현으로 반복적으로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뭔가 아직은 만족스럽지는 않다. ㅡㅡ;;;
  10. 다른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을까 해서 메시지 성경이나, 다른 번역본을 찾아 읽어 보기도 한다. 시편... 왜 이렇게 힘들게 읽고 있는 것인지... 내 문제인가?
  11. 이건 완전히 다른 얘긴데, 제2권의 시작인 시편 42편을 메시지 버전으로 읽었는데, 개인적으로 참 좋더라. 심플한 표현 안에서 강한 울림이랄까.

A white-tailed deer drinks

from the creek;

I want to drink God,

deep draughts of God.

I’m thirsty for God-alive.

I wonder, “Will I ever make it—

arrive and drink in God’s presence?” <Psalm 42, Mess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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