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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onal reflections & scribbles

unwanted solitude "the state or situation of being alone." - solitude solitude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봤더니 이런 정의를 알려준다. 나는 자유와 solitude를 즐기는 사람이다. 갑자기 무슨 일이 캔슬 되었을 때, 잘 됐다고 생각할 때가 많은 편이다. 그래서 얻게 된 혼자만의 시간을 즐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사람을 안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말 통하는 사람들과는 몇 시간이라도 앉아서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도 피곤하지 않을 수 있다 (나의 극내성적인 성향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은 이해가 안 되는 말일 것 같지만.. 아무튼...). 그런 몇 명만 주변에 있어도 내 인생은 훨씬 풍성해진다. 해외 선교사로 산다는 것은 혼자 지내는 상태와 상황 속에 끊임없이 나를 내던지는 삶.. 더보기
기도 응답 누군가에게는 기도 응답일 수 있으나, 다른 이에게는 아닐 수도 있지 않은가. 나의 이익만을 생각하고 한 기도대로 이루어진 것이 진정 기도 응답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많은 경우 어찌 기도해야 할지도 모를 때가 더 많은 거 같은데... 나만 이렇게 시니컬한 거? 더보기
연락이 왔다 한 후원 교회로부터 연락이 왔다. 후원 교회로부터의 연락이 자주 있는 일은 아닌데 느닷없이 연락이 오면, 마음이 콩닥 거리기 시작한다. 불안함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야기 좀 하자고 하면, '아... 올 것이 왔구나. 후원을 끊이시려고 하나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후원이 끊긴 경우가 한 두번이 아니기에 이제는 놀랄 일도 아닐 것 같지만, 한 두 번이 아니었기에 그 "끊어짐"의 과정을 겪는 것이 달갑지 않은 것이겠지. 후원이 영원한 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하시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아름다운 이별은 쉽지 않은 것 같다. 사실 재정적으로 힘들어지는 것보다 순간 내 삶이 구차해지는 것 같아 슬플 때도 많았다. 우리가 무슨 실수라도 하지 않았는지 눈치 아닌 눈치를 보게 된다. 갑자기 을이 되.. 더보기
인생은 detour의 연속 남편이 사무실에서 집으로 걸어오는 사이의 풍경을 찍은 사진이다. 지난해 연말부터 계속되고 있는 공사 때문에 등하교 길은 물론 이곳저곳 오가는 길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오늘은 이 쪽 골목을, 내일은 저 쪽 골목을 막아, 차들을 빙빙 돌린다. 언제 어디서 detour 사인을 만나게 될지 알 수가 없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온 세계가 난리다. 현재로서 확진자가 없는 이 곳은 예전에 비해 조금 조용해진 것 같은 느낌은 있지만, 그래도 여행객들이나 출장길이 막히는 일은 다반사이다. 이번 주 출장만 해도 캔슬이다. 다음 달 출장은 아직 결정을 기다리는 상태이고. 목적지에 닿기 위해 detour를 해야할 상황이 온다. dead end보다 나은 상황일까? 더보기
텍스트를 넘어 콘텍스트로: 끝 드디어 끝. 속이 후련하면서도, 마음 속이 뜨끔한 경험을 왔다 갔다 했다. 교회 역사를 공부할 때마다 느끼는 점이지만, 유럽 교회 역사이든, 한국 교회 역사이든, 그 안에 내 신앙의 여정이 담겨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신앙이 "진화"할 수 있는가...라는 주제로 한 친구와 대화를 나누었다. "진화"라는 표현이 불편한 사람들도 있다는거 알지만, 또 성장이라는 표현도 사용할 수 있겠지만, 단순한 성장을 논하기에는 플러스 알파와도 같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aspect이 있다. 나는 요즘 내 신앙이 "진화"하고 있다고 표현한다. 전과는 너무도 다르고, 전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상태여서 이 표현이 더 마음에 와 닿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철저하게 isolated 되었을 때 바닥을 치는 무너짐과 동시에 엄청.. 더보기
bullies in the pulpits 루즈벨트 대통령이 "the bully pulpit"이라는 말을 썼다지. 그의 콘텍스트에서 이 말의 뜻은, 미국 대통령이 갖고 있는 권위를 뜻한다고 하는데, 자신이 가진 공적 위치에서 특정 이슈를 공론화 할 수 있는, 그래서 변화의 드라이브를 걸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뜻하는 말인 듯하다. 긍정적인 요소를 의미하는거 같다. 그런데 난, 요즘들어 더더욱, literally, pulpit에 서 있는 bully들만 보는 것 같아 속이 상당히 뒤집힌다. 성도들과 말씀을 나눌 때 좀 더 genuine하고 down to earth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with fear & trembling으로 할 수 없을까? 겁도 없이, 어떠한 필터도 없이, 말이면 다인 줄 알고 뱉어대는 설교를 듣자 하니, 상당히 불쾌할.. 더보기
minority의 삶 외롭다. 나를 이해해주는 이가 적다. 공유할 수 있는 경험의 부재. 삶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 내가 뭐 그렇게 다른가?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가? 아무도 나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만은 간절히 기대한다. 그리고는 내가 그 비밀을 지켜줄 것이라고 철떡같이 믿는다. 왜? 나는 loner니까. 딱히 규명할 만한, 의미가 있다거나, 힘이 있는 공동체의 일원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어디가서 이야기를 흘리고 다닐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의 공동체는 어디에 있을까. 나의 친구는 어디에 있을까.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만을 들어주길 바란다. 이야기가 아니라면, 돈을 주길 바란다. 지나가다 눈 인사도 제대로 주고 받았는지 어땠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한데, 당당히 기부를.. 더보기
201912 첫 학기 마지막 레슨 수업 마지막 날. 룻기서를 마무리했다. 아직 다음 주에 리뷰 데이, 테스트 데이, 게임 데이도 남아 있지만, 이번 학기에 가르쳐야 하는 내용들은 오늘로 마무리가 되었다. 신명기 25장의 내용을 읽으며 kinsman-redeemer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흥미로운 토론이 진행되었고 (물론 얼굴에 침 뱉는 이야기만 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 신명기는 신을 벗기고 얼굴에 침을 뱉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룻기서에는 샌들 이야기만 나온다),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kinsman-) Redeemer가 되는지에 대해서 나누었다. 중학교 수준이지만 충분히 만족할만한 성찰이 있었다고 본다. 사사기서와 연결시켜서 룻의 이야기가 주는 메시지에 대해서도 나름의 심도 깊은 class discussion이 나눠졌다. 한.. 더보기